어릴 때 엄청 시골에 살았다. 버스를 타려면 두 시간을 걸어서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가야 할 정도의 깡시골. 버스정류장에도 버스는 한 시간마다 한대가 왔던 것 같다.

 

그런 시골에서는 딱히 할 일이 별로 없다. 봄, 가을, 겨울엔 산에서 놀고 여름엔 강에서 논다.

여름에는 다들 강으로 간다. 여름방학이 되고 지금처럼 무더운 7월 즈음이 되면 집에 있는 날 보다 강가에 있는 날이 더 많다. 다들 텐트와 숙박장비를 챙겨 강으로 간다. 맨날 밥 먹고 잠만 자는 멍멍이까지 데리고 간다. 거긴 아주 크고 긴 강이 지나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강에는 사람으로 붐빈다. 우리 집은 텐트를 챙겨가진 않았고 잠은 집에서 자고 일어나면 또 강으로 갔다.

 

수영을 하고 고기도 잡는다. 고기를 잡을 땐 강에서는 낚시보다는 주로 어항을 쓴다. 고기잡이용 어항인데 ,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기는 힘든 그런 구조다. 물고기의 지능으로는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 못한다. 어항 안에 떡밥을 넣고 물속 돌에 고정을 시켜놓는다. 시간이 지나서 가보면 고기가 걸려들어있다.

 

한 남자 아이가 물속에 잠긴 채로 둥둥 떠 가는 모습. 물 위로는 햇빛이 비치고 있고 아이는 물 속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둥둥 떠가고 있다.
둥둥둥 어디론가 떠 간다

 

난 늘 옆집형과 같이 강에 갔는데 그 형은 수영을 아주 잘하는 형이었다. 형이 어항을 설치했고 , 우리는 고기가 걸려들 때까지 수영을 즐기며 기다렸다. 배가 고파지면 물고기를 건져 매운탕을 끓여 먹을 계획이었다. 수영을 하다 잠 쉬 쉬고 있었는데 나는고기가 얼마나 걸려들었을까 궁금했다. 어항을 보러 강둑 쪽으로 들어갔다.

 

강둑 쪽은 떨어지는 물살 때문에 바닥이 깊이 파여 수심이 깊다. 물살도 굉장히 빠르다. 나는 그걸 몰랐던 거다. 깊은 곳에서는 수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물안경을 쓴 채로 잠수를 해서 들어갔다. 어항 속에는 물고기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물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형에게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물장구를 쳐도 몸이 앞으로 나가질 않았다. 물살에 휘말려버렸다.

 

아무리 수영을 해도 물살을 이겨내지 못했고 점점 깊은 곳으로 떠내려갔다.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을 만큼 깊었다. 보통은 강바닥이 다 보이는데 강둑 쪽은 얼마나 깊은 건지 물색이 시퍼런 색이었고 바닥도 까매서 보이지 않았다. 발끝으로 강바닥을 겨우 밀어 얼굴을 물밖으로 내밀려고 애를 썼다. 너무 무서웠다. 마치 강바닥이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 저 밑에 끔찍한 괴물이 꿈틀거리고 있을 거 같았다. 점점 입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물이 얼굴까지 잠겨 물이 시야를 덮었다. 나는 공포에 질렸다.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가 발버둥을 쳐서 다시 얼굴을 내밀기를 반복했다. 물을 조금씩 먹으며 소리를 지를 겨를도 없이 계속 숨을 참았는데 결국 한계에 다 달았다. 숨을 참지 못해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급하게 숨을 쉬자 코와 입으로 물이 마구 들어왔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강제로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오는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목으로 물이 넘어가는 게 아니라 기도로 물이 들어오면 엄청난 고통이 생긴다. 강제로 물을 마구 집어 넣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 물을 너무 많이 먹은 데다가 목과 코에 물이 차서 고통스러웠다. 내 몸속이 모두 강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점점 힘이 빠졌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팔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점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피곤이 밀려왔고 갑자기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의 느낌은 너무 피곤해서 스르르 잠이 오는 느낌과 비슷하다. 서서히 잠이 드는데 엄마가 웃는 얼굴이 환하게 떠올랐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흑백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 나갔다.


오래전 내가 많이 아팠을 때 엄마품에서 잠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온화하고 편안했던 것 같다. 꿈을 꾸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내 몸은 물속에 잠긴 채 물살에 떠내려갔다. 어느 정도 깊이 까지 가라앉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물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강물에 몸을 맡긴 채 꿈을 꾸며 둥둥둥 어디론가 떠내려갔다. 아주 평온했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나른하고 아주 편안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나는 강가 모래사장 위에 누워있었다. 같이 왔던 동네형이 나를 구해 주었다고 한다. 그 형은 수영을 아주 잘한다. 내가 허우적 대는 걸 발견하고 바로 강둑으로 뛰어 왔다고 한다. 아마 물속에 가라앉자마자 구해낸 거 같다. 난 운이 참 좋았다. 시커먼 물속에 가라앉은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해 여름방학 때 우리 학교에서 1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 형이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2명이 되었겠지.
나는 그 이 후로 물이 무서워 강과 바다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여름휴가는 산으로 가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정도만 즐기고 , 강이나 바다는 그냥 바라보는 것만 좋아한다.